그저 안경처럼

깊게는 욕망이 제거된 얕게는 감정이 제거된 삶을 가끔 꿈꾼다. 그러면 눈뜨고 그냥 있을 수 있을까. 안경처럼. 얼음을 먹는 시간처럼 바다에 비 오는 풍경처럼 꿈이 좌절당하는 것을 호의가 거절당하는 것을 멍하니 볼 수 있을까. 안경처럼. 하루 8시간 심해 속을 걸어다니는 잠수부 아줌마처럼 하루 8시간 일터 속을 걸어다니고 가끔 목적 없이 한강변을 달리고 더 가끔 한강변 편의점에서 우유 마시고 빵 먹고 다시 달릴 수 있을까. 그저 안경처럼.

안경은 말한다 / 김혜순

눈뜨고 그냥 있다, 난 안경이니까.
결코 무엇을 보는 법도 없다, 난 그저 안경이니까.
저 화덕 위의 키조개가 뭘 보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냥 있다.
더더구나 나는 눈을 감을 줄 모르니까.
나는 얼음을 먹는 시간과도 같다.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도 모른다.
모래가 파도를 갉아먹는 것과도 비슷하다.
또 파도가 밀려오니까.
나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무색이다.
나의 왼쪽 눈알엔 바다가 있고
오른쪽 눈알엔 하늘이 있다. 그게 다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내가 있다. 그게 다다.
나는 바닷가에 묶여 이리저리 흔들리는 뗏목처럼 그냥 있다.
10년 후에 어디에 있을 거냐고 묻지 마라.
나는 그냥 있을 거다. 난 안경이니까.
아마 다리를 오므리고 누워 있을지도 모르겠다.
벗을 때나 입을 때나 나는 그냥 있다.
나한테 오는 사람은 왼쪽 하늘과 오른쪽 바다
두 개로 나뉘어서 온다.
그러니 안경에 대고 말하는 건 난센스다.
제 귀에 대고 말하는 거와 같으니까.
내 앞에서 우리의 기억 운운하는 건 난센스 중에 난센스다.
그렇다고 내가 하얗게 눈먼 것은 아니다.
눈뜨고 그냥 있는 거다. 멍하니란 말 참 좋다.
멍하니? 멍하다.
잠수부 아줌마가 있다.
25미터 산소줄을 잠수복에 매고
우주인 같은 철모를 쓰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키조개를 줍는다.
하루 8시간 심해 속을 걸어 다닌다.
3시간마다 바다에 매어놓은 배에 올라와 우유 마시고 빵 먹고
다시 모래를 뒤진다.
목줄에 묶인 검은 물개 같다. 피부는 미끈거린다.
키조개는 깊은 바다 밑 모래사막에 숨어 있다.
아무도 없는 곳. 키조개와 갈고리와 산소줄, 그리고 물안경이 있는 곳.
그리고 물안경 뒤에 아줌마가 있는 곳.
큰 얼음을 갈아 렌즈를 만든다.
그 렌즈를 입속에 넣어본다.
바다에 비 온다.
바다는 말한다.
나는 눈뜨고 그냥 있다.
난 안경이니까.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바람이 불고 바람은 불고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고 바람은 불고. 깊은 밤, 오늘 하여진 일들이 하려던 일들인지는 분명치 않다라고 생각한다.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오늘의 밀물과 밀물과 밀물이 어제의 밀물과 밀물과 밀물로 번져가는 밤. 바람이 불고 바람은 불고 바람이 불고.

피로와 파도와 / 이제니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바다를 향해 열리는 창문이 있다라고 쓴다
백지를 낭비하는 사람의 연약한 감정이 밀려온다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한적한 한담의 한담 없는 밀물 속에
오늘의 밀물과 밀물과 밀물이
어제의 밀물과 밀물과 밀물로 번져갈 때

물고기들은 목적 없이 잠들어 있다
물결을 신은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스치듯 지나간 것들이 있다라고 쓴다
눈물과 허기와 졸음과 거울과 종이와 경탄과
그리움과 정적과 울음과 온기와 구름과 침묵 가까이

소리내 말하지 못한 문장을 공책에 백 번 적는다
씌어진 문장이 쓰려던 문장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이를테면 태안반도쯤일까. 검은 별들의 하늘, 돛배와 갈매기의 바다, 눈 내리는 겨울 나무들의 땅, 그리고 생(生)이라는 예인선에 이끌린 사람들이 있는 어디쯤에서 박정대를 읽을 때 세상은 고스란히 음악이 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악기여서, 별은 하늘을 연주하고 하늘은 별을 연주하고, 돛배는 바다를 연주하고 바다는 돛배를 연주하고, 눈에 젖은 나무들은 비로소 차분히 저희들의 기타 줄을 고른다. 그 거대하고 장엄한 음악을 들으며,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3월인데도,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린다.

음악들 / 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예측할 수 없던 그때의 앞날이…

어느새 2월이 다 지나간 셈이니, 이렇게 다섯번을 더 살면 올해가 갈 것이고, 그렇게 아홉번을 더 살면 사십대가 갈 것이고, 세상에 나오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만큼 세상에서 물러나기 위해 준비하다 보면 “예측할 수 없던 그때의 앞날이/ 어느새 슬픈 옛날로 굳어버린 오늘”이 와 있을 것이다.

과거 / 김광규

대학병원을 뒤로하고
창덕궁 돌담길 따라
율곡로를 걷는다
소녀 시절처럼 혼자서
타박타박 걸어간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던 시절
플라타너스 가로수 줄지어 선
이 길을 걸어서
집과 학교를 오고 갔었지
예측할 수 없던 그때의 앞날이
어느새 슬픈 옛날로 굳어버린 오늘
시간의 긴 흔적 간곳없고
온 세상이 조여드는 듯
마음은 왜 이렇게 답답한지
평생의 동행 먼저 보내고
혼자서 남은 길 걸어가는 할머니
늙은 소녀의 먼 뒷모습

‘마흔 살’ 생각

이문재의 ‘마흔 살’은 옛날이 자꾸 되돌아오는 나이였나 본데, 내 마흔 살은 앞날이 자꾸 밀려오는 나이인 듯하다.

고루한 제도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탓인지/덕인지 과거는 깃털처럼 가볍고 미래는 안개처럼 뿌옇다. 나는 지금 불투명한 미래의 선택지들 앞에서 잠시 불안하나 이 또한 결국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을 알아 마침내 평안하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나와 생일이 4일밖에 차이 안 난다는 ‘마흔 살’ 故 최은석 대표에겐 되돌아오는 옛날이 무거웠을까, 밀려오는 앞날이 무거웠을까. 그가 생전에 했던 모든 선택들을 존중한다. 평안히 잠들길.

마흔 살 /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 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어떤 진지함도 다르게 읽히는 시대

누군가 자크 프레베르의 ‘밤의 파리’를 읽고는 “나보다 한참 어린 애가 내 앞에서 허세 부리는 모습을 보는 듯한 귀여운 시야”라고 평한 걸 읽었다.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다. 이 시가 씌어진 때와 장소가 독일군 공습 탓에 등화관제를 자주 했던 1940년대 파리라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면.

밤의 파리 / 자크 프레베르

어둠 속에 하나씩 불 붙이는 세 개피 성냥
첫 개피는 너의 얼굴 모두 보려고
둘째 개피는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개피는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송두리째 어둠은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려고.

권태응의 ‘어젯밤 손님’ 역시, 이 시가 씌어진 때가 1940년대 해방 이후이고 해방정국에선 이 세상을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면, “귀여운 시”로 읽힐 수 있겠다. 빛도 자유도 풍요로운 이 시대엔, 마찬가지로,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떤 진지함도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다.

어젯밤 손님 / 권태응

사랑방 문 앞에
낯선 구두.

엄마 엄마 어젯밤
누가 왔수.

밤늦도록 떠들썩
웃음소리가

잠결에 자꾸만
들려 오데.

어젯밤 꿈같이
오신 손님.

너는 너는 누군지
모를 거야.

너 낳던 해 똑 한번
다녀 가신

아빠의 젤 친한
동무란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이해했었다면

나만의 자유로운 오독이 허락된다면, 나는 오늘 이 시(이영광, ‘숲’)를 결혼에 관한 시로 읽고 싶다. 아니, 결혼이라는 제도에 속박돼 생각할 필요는 없지. 그렇다면, 연애라는 어떤 상태/정황의 그 다음을 노래하는 시라고 해도 좋다.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중략) 나무와 허공과 한 사나이를, 딱따구리와 저녁 바람과 솔방울들을 온통 지나가게” 했다면, 그러니까 구멍 숭숭 난 숲자(字) 같은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이해했었다면. 부질없는 가정법(假定法)으로, 풀지 못했던 방정식을 회상하게 하는 시다.

숲 / 이영광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기합(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또 이런 것이다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한 부르튼 사나이를 유심(有心)히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나무와 허공과 한 사나이를, 딱따구리와 저녁 바람과 솔방울들을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멍 숭숭 난 숲은 숲자(字)로 섰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다 통과시켜주고도 제자리에, 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밤이 없으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밤이 없으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이성을 접고 감성을 펴고, 낮의 일을 잊고,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않고, 중얼거리고, 문장을 읽고 문장을 쓰고, 맹세를 모르고, 유연하고 겸손하게 모든 것을 부인하고,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고, 연인을 만나고, 골목이 완성되고 사라지고, 검은 공기 속을 흘러가고, 돈을 버리고, 잠을 청하고 잠에 빠지고, 꿈을 꾸고. ‘밤의 연약한 재료들’을 만지고.

밤의 연약한 재료들 / 이장욱

밤이란 일종의 중얼거림이겠지만
의심이 없는
성실한
그런 중얼거림이겠지만

밤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않고
맹세를 모르고
유연하고 겸손하게 밤은
모든 것을 부인하는 중

죽은 사람의 과거가 빈방에서 깊어가고
소년들은 캄캄한 글씨를 연습하느라 손가락만 자라고
늙은 개의 이빨은 우우 짖을 때마다
설탕처럼 녹아가는데

신축건물들이 들어서자
몇개의 골목이 중얼중얼 완성되고
취한 남자는 검게 그을린 공기 속을 흘러가고
밤은 그의 긴 골목이 되었다가
그가 되었다가

드디어 외로운 신호처럼
보안등이 켜지자
개의 이빨은 절제를 모르고

갓 태어난 울음들이
집요하고 가득한 밤을 향해
오늘도 녹아가는 이빨을 
필사적으로 세우고

사랑이나 하면서 살면 좋으련만

정신이 기타줄처럼 팽팽할 땐 박정대의 시를 읽는 게 적절하다. 어제는 네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고,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고,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고(어제),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한다(그대의 발명). 이렇게 사랑이나 하면서 살면 좋으련만.

*

어제 / 박정대

어제는 네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적막한 우편함을 쳐다 보다가 이내 내 삶이 쓸쓸해져서, ‘복사꽃 비 오듯 흩날리는데,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취하라, 유령(劉伶)도 죽으면 마실 수 없는 술이거니!’ 이하(李賀)의 ‘장진주(將進酒)’를 중얼거리다가 끝내 술을 마셨다, 한때 아픈 몸이야 술기운으로 다스리겠지만, 오래 아플 것 같은 마음에는 끝내 비가 내린다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환청에 시달리다 골방을 뛰쳐나가면 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는 소리가, 자꾸만 부서지려는 내 마음의 한 자락 낙엽같아 무척 쓸쓸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메마른 가슴에서 자꾸만 먼지가 일고, 먼지 자욱한 세상에서 너를 향해 부르는 내 노래는 자꾸만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한다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음악의 한가운데로 별똥별들이 하얗게 떨어지고, 메마른 섬 같은 가을도 함께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낡은 기타를 매만질 때, 너는 서러운 악보처럼 내 앞에서 망연히 펄럭이고 있었다

어제는 너무 심심해 오래된 항아리 위에 화분을 올려놓으며, 우리의 사랑도 이렇게 포개어져 오래도록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우젓 장수가 지나가든 말든, 우리의 생이 마냥 게으르고 평화로울 수 있는, 일요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밤새도록 몇 편의 글을 썼다, 추운 바람이 몇 번씩 창문을 두드리다 갔지만 너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속 톱밥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톱밥이 불꽃이 되어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生도 언젠가 별들이 가져가겠지만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

그대의 발명 / 박정대

느티나무 잎사귀 속으로 노오랗게 가을이 밀려와 우리 집 마당은 옆구리가 화안합니다
그 환함 속으로 밀려왔다 또 밀려나가는 이 가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한 장의 음악입니다

누가 고독을 발명했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들이 다 음악입니다
나는 지금 느티나무 잎사귀가 되어 고독처럼 알뜰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누가 저녁을 발명했습니까 누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사다리 삼아서 저 밤하늘에 있는 초저녁 별들을 발명했습니까

그대를 꿈꾸어도 그대에게 가 닿을 수 없는 마음이 여러 곡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저녁입니다
음악이 있어 그대는 행복합니까 세상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음악이 되는 저녁,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합니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한 주간 마음에 독이 많이 쌓여서인지, 그럼에도 설렐 만한 일이 하나쯤은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요즘 고종석의 트윗을 따라 읽고 있어서인지, 늦은 밤 집에 들어와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꺼내 읽게 됐다.

이런 ‘사랑의 말’들을 다시 느껴볼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잠시였고, 이내 고종석의 ‘말들의 사랑’에 빠져들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잇는 연약한 듯하면서 단단한 논리, 그러면서도 때때로 비집고 나오는 논리의 빈틈을 메우는 꼼꼼함, 또 한편으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감성의 흔들림까지 챙기는 섬세한 말들의 향연이 우아하다.

고종석의 문장을 느낄 만한데 아직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책이 절판됐다. 수없이 절판된 우리말 시집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말’ 못지않게 ‘말들의 사랑’도 더없이 부질없는 시절이다.

길들이다

길들다의 사동형. 원래는 짐승을 잘 가르쳐서 부리기 좋게 만든다는 뜻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라는 동화에서 이 말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아프리부아제를 특별한 뜻으로 사용했다. 그녀가 그를 아프리부아제했다는 것은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는 뜻이다. ‘어린 왕자’가 프랑스나 프랑스어 사용 지역에서만이 아니라 번역본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예외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둔 뒤로 아프리부아제에 해당하는 다른 외국어 단어들도 이런 용법을 덤으로 얻게 됐다. 그가 그녀를 길들였다는 것은 그녀가 그를 사랑하게 됐다는 뜻이다.

눈맞추다

남녀 사이에 서로 사랑하는 눈치를 보이는 것을 눈맞춘다고 한다. 사랑은 눈에서 시작된다. 눈맞춤은 모든 사랑의 정지(整地: 땅을 반반하게 고름) 작업이다. 눈맞춤이 있은 뒤에야 입맞춤이 있을 수 있다. 눈이 맞은 뒤에야 배도 맞는다. 눈은 입술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히 말한다. 눈은 귀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히 듣는다. 눈은 리얼리스트다. 눈은 그리움의 통로다. 눈에 어리다, 눈에 선하다 같은 말은 그리움이 있는 사람에게 소용되는 표현이다. 눈맞추다나 눈맞다만이 아니라 눈가다, 눈독들다, 눈독들이다, 눈주다, 눈웃음치다 같은 동사들은 사랑에 눈뜬 사람에게 소용되는 동사다.

스스럽다

그녀와의 또는 그와의 정분이 두텁지 못해 그녀를 또는 그를 대하기가 어렵고 조심스럽다는 뜻이다. 스스러운 마음이 없는 것을 스스럼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스스럼이란 스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이다. 사랑이 하나의 과정이라면 그것은 스스럼이 없어지는 과정이다.

즐김

동사 즐기다의 명사형. 사랑을 포함한 삶의 궁극적 목표. 그러나 복받은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목표. 무언가를 즐기고 있는 마음의 상태는 즐겁다.
동사 즐기다에서 형용사 즐겁다를 거쳐 동사 즐거워하다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은 그리다에서 그립다를 거쳐 그리워하다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과 이형동질이다. 아니, 이질동형이다. 그것은 내적/외적 표현의 상태가 내적 새김 또는 삭임의 상태로 침잠했다가 그것이 넘쳐흘러 다시 외적 표현의 상태로 지양되는 과정이다. 내적/외적 동작이 내적 상태로 움츠러들었다가 그 내적 상태가 긴장의 극점에 이르렀을 때 외적 동작으로 장엄하게 전화된다. (후략)

설레다

바람이 들다; 권태가 치료되기 시작하다.
설렌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 마음속의, 그러므로 당신 몸 속의,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당신이 접속됐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혈관에 미약(媚藥)을 주사했다는 뜻이다.